2005년 8월 26일 금요일

지하철에서 생겼던 일

내 일상의 끔찍한 기억 중 하나. 아직까지도 꿈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물론 읽는 사람이야 코메디겠지만...(버럭! 무서웠다고요!)

지하철에서 생겼던 일

때는 옛날 옛적. 내 살결이 뽀샤시하고 담배를 새끼손가락과 약지 사이에 끼워피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다.

난 서울에 볼 일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내린 뒤, 인천으로 오는 전철(거의 막차였다)로 갈아탔다. 요행히 자리를 잡아서 정 중앙 지역에 앉을 수 있었다. 내 옆에 (훗날) 인상적인 아저씨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신문을 펼치셨다. 그 아저씨가 다리를 넓게 벌려 앉는 스타일인지라 비좁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구로역에서 그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는 내 정면에 앉았다. 잔뜩 취해서 몸도 비틀거린다. 얼굴 화장이 진하고 옷매무새가 위태위태했다. 구로역에서 사람들이 제법 내려서 자리도 조금 비워진 편이었는데, 왜 내 앞쪽의 중앙자리에 앉았는 지 모르겠다. 대부분 문가쪽의 맨 구석자리를 잡는 게 정상 아닐까? 난 불안한 눈으로 그 여자를 주시했다. 평소같았으면 전철에서 자리를 잡는 즉시 고개를 떨구고 잠을 청했을 텐데, 그 날은 무섭도록 눈이 말똥말똥했다. 내 앞의 여자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곡역에서 그나마의 사람들도 꽤 내리고 자리가 많이 비워졌을 때다. 게다가 다음은 부천역인지라 미리 일어서서 문 앞으로 다가간 사람들도 있었다.

내 앞 여자가 늘어진 모습으로 뭐라뭐라 꿍얼거리더니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우읍. 읍!"

축하합니다, 아들입니까? 그렇게 묻고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불안했다. 난 여자가 곧 전철 바닥에 시큼한 것을 널리 펴서 어린 나를 경악케 하고저 할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내밀었던 두 발을 안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발끝만을 바닥에 붙인 채 발바닥은 전철의자에 바짝 갖다댔다. 설마 여기까지 튀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냥 일어서서 다른 자리로 갈까?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골목길에서 무서운 싱하형 군단을 만난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 옆에 계신 아저씨는 신문을 무릎 위에 놓아두고 고개를 뒤로 꺾은 채 주무시는 중이었다. 이 속 편한 아저씨같으니! 당신의 구두가 다채로워져도 난 모를 테야!

"우으읍! 으읍!"

소리가 높아졌다. 이건 내 환상이 빚어낸 예상단위의 위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분명히 저 여자는 비닐봉투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고, 봉투봉투 안 열렸다. 인천역에서 청소부 아주머니가 재수 옴붙었다며 불평할 일이 곧 벌어질 것이다. 난 더욱 긴장해서 다리를 최대한 움츠렸다. 그리고...

"우어업!"

푸하학!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상상이 가는가? 몸을 숙이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머리를 헤드뱅하듯 휘돌리며 치켜들더니 포트리스 45도 각을 수년 간 연습한 듯 최고의 교차점에서 그걸 내뿜었다. 전동차 내부 천장을 반월형으로 가득 메우며 나를 향해 쏟아지는 이물질을 경험한 적 있는가? 이 글 쓰면서 손이 다 떨린다. 그 엄청난 최연성급 물량이 박지호의 닥치고 질럿처럼 나를 향해 몰아쳤다.

난 위기의 순간에 절세의 고수가 되었다. 슬라이딩을 한 것이다. 바닥으로 허리를 숙이고 가차없이 앞으로 몸을 날렸고, 성공적으로 내 자리를 벗어났다. 이 때의 내 행동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무용담-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어린 소녀를 달려가서 받아낸 것 같은 무용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난 이 순간적인 행동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내 바지 뒤쪽-아킬레스건 부위-에 약간 묻은 것 빼놓고는 이물질을 모두 피한 것이다.

난 급히 일어나서 내가 앉았던 자리를 봤다. 끔찍했다. 창문까지 온통 엉망이었고, 의자는 제대로 화사했다.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저씨의 멍한 얼굴. 자다가 맞은 날벼락이 실감나지 않는 듯 여전히 고개를 치켜든 채 눈만 굴리고 계셨었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죽한 액체가 나를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제대로 뒤집어쓰신 그 아저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고, 화조차 내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는 계속 오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아저씨의 다음 행동이 어땠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난 쪽팔려서 다른 칸으로 도망갔으니까.

이 때의 기억이 가끔 꿈에 나온다. -_-;;

댓글 20개:

  1. 우우욱...........(테러입니다 이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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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때 술자리에서 해주셨던 얘기군요. 언제들어도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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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ㅇㅁㅇ..

    oTL[<ㅡ방금 밥먹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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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엽기적인 그녀를 찍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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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하하하-!

    저는 웃기기만하네요. 직접 겪으면 웃기지만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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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묘사력이 멋집니다 (??) 포트리스 45도 각이라.... 덜덜; 절세 고수 슬라이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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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브레스를 피하시다니 고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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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윗분 리플에 동의. 정말 브레스를 피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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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과연...인천에서 수원까지 걸어가셨단 이야기때부터 짐작했지만, 경공술의 달인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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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싱하형이 여기서 등장하는 겁니까....... 여튼 오바이트(Over Eat)는 무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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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테러 성공이군요.(꼬야님, 레미님 축하! -_-/)



    서린언니// 술자리 한 번 가져야죠. ^^



    Niche// 설마... 분노하신 거예요? ;ㅁ;



    김현, 로느// 그 캐릭터성 강한 반응은...



    소울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1234님의 블로그를 봐서는 반드시 비굴해야 한다)



    여름공주// 근데 외모가...(전지현급 외모였다면 슬라이딩의 목표지점이 달랐겠죠)



    르세// 제 심정 아시는 군요. 술자리에서 얘기할 때 다들 웃더라고요. -_-



    역설// 전 아기를 구하기 위해 엄마가 트럭을 들었다는 말을 믿습니다. ㅠ_ㅜ



    1234// 에헴!(기뻐한다)



    T·Takashi, 김근우// 그, 그렇군요! 브레스였던 거예요!(아킬레스건을 살피며...)



    좀비君// 전 학창시절에 육상 장거리 선수였어요. 천안까지 걸어간 적도 있었는 걸요. ^^;;(만만디 경공 만큼은 달인입니다!)



    둔저// 우리 같이 겪어요. *-_-*



    82828// 그, 그래서 오바이트인 겁니까?(진짜 그런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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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스, 슬라이딩... 워, 원츄 ;ㅂ;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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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오바이트(Over eat)는 과식이고-토하는 건 오바히트(Over Heat)가 잘못 알려진 것일 걸요.

    토할때 내부기관에서 내용물이 올라오는게 자동차 엔진이 오버히트되어 거꾸로 물을 내뱉는 장면과 일치한다고 해서;;;(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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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아라이// 엎어진 사람 옆에 천천히 다가와 어깨를 쌔리며 엄지 들어올리기입니까? -_-;;



    Lemiel// Heat에 '최고조'라는 뜻도 있네요. '최고조를 넘기는 그 순간!'을 말하는 것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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