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오나경의 블로그를 읽고 생각나서 적는다. 나 또한 '~을 바래.'라고 많이 써 오다가, 최근에야 '~을 바라.'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내게 "성화야, 나는 네가 날 사랑해주길 바라."라고 말하는 경우를 접해본 적이 없다.(실은 '바래'니 '바라'니가 문제가 아니라, 저런 경우 자체가 없었다. 우엉!) 그 때문에 '바라'의 존재는 나를 여러 모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전에 먼저 언급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출판사 편집진이 자주 저지르시는 실수에 대한 얘기다.
이어지는 내용
출판사 편집진은 교정을 볼 때, '작중 화자의 대사나 인물의 직접적인 생각을 적은 문장'에 맞춤법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물의 이름을 멋대로 바꾸는 교정만큼이나 악덕 교정이다.
맞춤법이라는 것은 '글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글의 약속'이다. 대사와 생각표현 등의 일부 문장들은 인물의 성격을 알리는 제2의 표현법이다. 여기에 맞춤법을 적용시킬 경우, 심하게는 작품의 성격 자체를 망가뜨리는 결과가 나온다. 또는 특정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작가의 의도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맞춤법을 반드시 파괴해야 할 때가 있다. 독자의 이해를 위한 맞춤법 파괴의 문장에게까지 맞춤법을 적용시킨다면, 맞춤법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바람'과 '바램'에 대해 상당한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문법 상으로는 '바람'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 동안 사람들은 왜 '바램'이라고 발음했을까?
우리나라 발음은 명사형으로 끝맺음을 하거나 맺음말을 할 때, 양성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ㅣ나 ㅡ같은 음성모음들을 주로 사용하는 게 버릇이 되어 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때, '이렇다' '저렇다'라는 양성모음의 끝맺음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서의 발음은 '이랬어' '저랬어'등의 음성모음이다. 예외는 높임말인데, 높임말에는 객관적인 언어표현으로 상대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어서 글로 표현할 때의 것과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다. 인물과 편하게 대화를 할 경우, 국어는 대부분 음성모음으로 맺음말을 한다. 다만 단어 자체에서 높임말의 성격을 띄는 느낌이 있을 경우, 양성모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내가 단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잘못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쪽으로만 생각해서 단어를 골라냈을 지도. -_-;;
아무튼 '바램'이 사투리에서 비롯되었을 지, 아니면 표준말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인 지는 나도 모른다. 신경쓰이는 것은 이 '바람'이 가진 의미에서 '상대하는 입장'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원함'이 가진 의미와는 대상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상대자가 연인이건 친구건 거의 대등한 조건, 가슴 속 터울을 나눌 수 있는 서로에게 써먹을 단어처럼 여겨지는 것이 이 '바람'이다.
덧붙여서 '바라다'는 피동적인 동사다. 내가 아닌 타인의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의미를 가졌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피동사에는 '이, 히, 리, 기'가 붙는다. 그 성향 자체가 '바람'을 '바램'으로 바꾸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러한 국어 쌩초보의 나홀로 멀더 음모론으로 뭘 어째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미 문화의 하나가 되어버린 단어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단어다. 국어가 참 다양한 표현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을 올바르게 맞춘다는 이유로 삭제하거나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억할 수 있는 약속이 되어버렸다면 그 단어는 그 단어대로 존재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까놓고 얘기해서 이런 문제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세상이라면, '에펠탑'이나 '남산타워' 둘 중 하나는 진작에 이름을 바꿔서 정리해야 했다.
외래어 문제도 사실 그렇다. 일상 생활의 일본어 쓰지 말라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가 있는데, 왜 그래야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 언어들을 모두 꿀꺽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한국어다. 쓸 수 있는 것을 왜 안쓰려고 난리인가. 그 배타적 행동이 애국심의 발로와 국어사랑 정신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도 따지고 보면 애국심의 발로와 조선사랑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외래어 마구 써야 한다. 배타적으로 갈수록 타국의 언어는 다양해지고, 국어는 안에서만 놀게된다. 과거를 파내는 것과 미래를 달리는 것의 차이는 대한제국 시절에 징하게 깨달았다. 외래어를 계속 받아들이면 국어가 망할 것 같은가? 아니다. 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누가 호환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좋아하겠는가.
앗!
삼천포다. 여기서 끝. 이런 젠장.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
맞춤법이라는 것은 '글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글의 약속'이다. 대사와 생각표현 등의 일부 문장들은 인물의 성격을 알리는 제2의 표현법이다. 여기에 맞춤법을 적용시킬 경우, 심하게는 작품의 성격 자체를 망가뜨리는 결과가 나온다. 또는 특정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작가의 의도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맞춤법을 반드시 파괴해야 할 때가 있다. 독자의 이해를 위한 맞춤법 파괴의 문장에게까지 맞춤법을 적용시킨다면, 맞춤법의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바람'과 '바램'에 대해 상당한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문법 상으로는 '바람'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그 동안 사람들은 왜 '바램'이라고 발음했을까?
우리나라 발음은 명사형으로 끝맺음을 하거나 맺음말을 할 때, 양성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ㅣ나 ㅡ같은 음성모음들을 주로 사용하는 게 버릇이 되어 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때, '이렇다' '저렇다'라는 양성모음의 끝맺음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에서의 발음은 '이랬어' '저랬어'등의 음성모음이다. 예외는 높임말인데, 높임말에는 객관적인 언어표현으로 상대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어서 글로 표현할 때의 것과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다. 인물과 편하게 대화를 할 경우, 국어는 대부분 음성모음으로 맺음말을 한다. 다만 단어 자체에서 높임말의 성격을 띄는 느낌이 있을 경우, 양성모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내가 단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잘못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쪽으로만 생각해서 단어를 골라냈을 지도. -_-;;
아무튼 '바램'이 사투리에서 비롯되었을 지, 아니면 표준말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인 지는 나도 모른다. 신경쓰이는 것은 이 '바람'이 가진 의미에서 '상대하는 입장'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원함'이 가진 의미와는 대상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상대자가 연인이건 친구건 거의 대등한 조건, 가슴 속 터울을 나눌 수 있는 서로에게 써먹을 단어처럼 여겨지는 것이 이 '바람'이다.
덧붙여서 '바라다'는 피동적인 동사다. 내가 아닌 타인의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의미를 가졌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피동사에는 '이, 히, 리, 기'가 붙는다. 그 성향 자체가 '바람'을 '바램'으로 바꾸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러한 국어 쌩초보의 나홀로 멀더 음모론으로 뭘 어째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미 문화의 하나가 되어버린 단어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단어다. 국어가 참 다양한 표현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을 올바르게 맞춘다는 이유로 삭제하거나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억할 수 있는 약속이 되어버렸다면 그 단어는 그 단어대로 존재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까놓고 얘기해서 이런 문제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세상이라면, '에펠탑'이나 '남산타워' 둘 중 하나는 진작에 이름을 바꿔서 정리해야 했다.
외래어 문제도 사실 그렇다. 일상 생활의 일본어 쓰지 말라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가 있는데, 왜 그래야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 언어들을 모두 꿀꺽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한국어다. 쓸 수 있는 것을 왜 안쓰려고 난리인가. 그 배타적 행동이 애국심의 발로와 국어사랑 정신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도 따지고 보면 애국심의 발로와 조선사랑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외래어 마구 써야 한다. 배타적으로 갈수록 타국의 언어는 다양해지고, 국어는 안에서만 놀게된다. 과거를 파내는 것과 미래를 달리는 것의 차이는 대한제국 시절에 징하게 깨달았다. 외래어를 계속 받아들이면 국어가 망할 것 같은가? 아니다. 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누가 호환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좋아하겠는가.
앗!
삼천포다. 여기서 끝. 이런 젠장. -_-;;
레디 오스 성화 올림
한국어가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 언어를 모두 꿀꺽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답글삭제적어도 일어는 물론이요, 영어라든지, 독어라든지(불어는 그 특유의 강짜 때문에 일단 차지하더라도) 여기저기 나라말에 완전히 자리잡은 외래어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기특하게도 사전에까지 자리잡고 있음) 한국어에서 유독 일본어만 핍박하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하긴 하죠. '무대포' 정도는 욕먹지 않고 쓰게 해달란 말이다!!
꼬야// 영어로 써버리세요.'Not-Cannon..[퍽!]
답글삭제삼천포군요(먼산)
답글삭제저도 그게 기억나네요. 아마, 이영도 님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바래'를 전부 '바라'로 고쳐둔 걸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찾아봤었지요. 그 후로는 '바라'라고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어색하네요...
답글삭제무대포...혹시나 했더니 일본에서 온거였나보군요.
답글삭제저는 외래어 받아들일때 우리 국어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거랑 퇴보시키는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것 구분정도는 해야한다고 봐요. 가끔 보면 쓰잘데기 없이 말 길게 늘여먹는 요상한 어법이 튀어나와서--;;
사아기// 개인적 견해이긴 하지만, '발전시키는 방향'과 '퇴보시키는 방향' 양쪽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면, '그저 발전시키는 방향'보다 더 큰 발전성이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
답글삭제레디오스//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답글삭제어쨌건 전 외래어건 순 우리말이건 간에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정확하고 편리한 의사전달뿐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만 지킬 수 있다면 나머지 도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죠^^
꼬야//아까 물어보려다가 깜빡했는데 무대포 원래 뜻이랑 발음이 뭐죠? 궁금하네요ㄱ-;
교양있는 현대 서울 사람들이 모두 '바래'라고 하는데 '바라'라고 하면 안될듯. (끝까지 빌어먹을 국어학자들을 물고 늘어지기)너희들이나 자장면 먹고 우리에겐 짜장면을 돌려줘!
답글삭제사아기 // 無鐵砲(むてっぽう= 무텟포-) 철포(총)도 없이 전장에 나서는 것에 비유하는 것으로 어떤 일을 전후없이 무턱대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만.... 오히려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자주 사용되는 듯 하더군요(사실 이런 상황은 한국인에게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일지도.....)
답글삭제확실히.. 맞춤법을 바꿔서 쓸 경우에 원래의 느낌을 살릴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바꿔 써주겠지만 그 의미를 너무 변질시키는 경우에는 맞춤범을 바르게 써주기가 그렇지요-. 특히 '바라'와 '바래'의 경우는 확실히..느낌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동감! 시적허용처럼 문학적허용이라는 식으로라도 인정하면 안되는 걸까요? [동아리 선배님중 한분께선, 지도교사님과 졸업때 까지 이 문제로 대립하셨죠. 그렇다면 사투리는 왜 되는겁니까! 하고 말이죠.]
답글삭제짜장면의 경우는 짜장면과 자장면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았던가요...그리고 바라의 경우는 ~하다 라는 동사를 봐도 ~해 라고 하지, ~하 라고 하진 않잖습니까. 바람은 명사형이니 바램이 틀리지만 바래는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합니다.
답글삭제좀비君// 그것은 '~해'의 어원이 '하다'가 아니라 '하여'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하다'라는 발음으로 정착이 됐지만, 고어에서는 '해다'와 가까운 발음이었죠.(ㅣ가 거의 묵음이 되어 사라진 케이스입니다)
답글삭제문법상으로 '바라다'와 비슷한 케이스가 '자라다' 또는 '나무라다'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래' 또는 '나무래'라고 표현하지는 않죠. 일단 문법상으로는 '바라'가 맞긴 맞습니다. 제가 '바래'로 쓰인 이유를 생각할 때 이런 문법적인 부분을 따지지 않고 관습적 추정을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트랙백은 언제나 크로스 카운터. 레디옹. 우리 리플 좀 달고 살자니까요!(버럭)
답글삭제깜빡했어요, 로나경. 하지만 깜빡 안 할 때는 온통 라그얘기 뿐인 걸요. ;ㅁ; 다시는 깜빡할게요.(-_-??)
답글삭제으음...그런 어원이었군요. 잘 배웠습니다.^^
답글삭제'자래'는 안쓰지만 '나무래'는 줄곳 써왔다는... ^^
답글삭제하여 나무라다나 바라다는 뭔가 대상이 있다는 공통점이...
뭔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없음 말래...
trackback from: 저는 '부디 그러길 <바라>'라고 말하는 사람을...
답글삭제여태까지 단 한명도 못봤습니다. 대체 뜬금없는 소리냐고 물으신다면... 맞춤법 문제입니다. 아침에 열심히 글을 쓰다가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 뭐 이런 느낌의 대사를 썼거든요. 옛날에는 이런 경우에는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래'라고 썼지만 일단 출판을 하게 된 후에는 출판사에서 '바라'라고 쓰는게 맞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되도록 '바래'라고 쓰는 일이 없도록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종종 매우 자연스럽게 '바래'라고 써..